벙개 후기

by kiki posted Mar 17,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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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일랜드 고유의 명절에서 비롯된 성 패트릭 축제일이다.
그린 비어를 마시려고 목욕 재개중에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온몸이 물로 뒤범벅인데 않받을 수도 없고 해서 여보세요! 했더니 가래떡님이 ~~~
"나좀 봅시다"
왜요?
"할렐루야 복음센터에서 3시반에 봅시다"

불야 불야 나갔다 아무도 없었다 바람 맞은 것이다.
때르릉!
"여보시오 우리집으로 오시오!"
네~~(힘 빠져서)
갔다니만 장바구니 잔뜩 쌓아놓고 한처자는 앞치마 두루ㅡ고 상추 씻기 Kiki님은 와인 마시기~~~~
"자 갑시다"
어디요?
"피드먼 팍이오"
거긴 왜요?
낼 우리횐님들 위해 정찰 갑시다!
혼자 가슈 아님 날 따라오던지
"맘대루 하슈"
빵 두개 사고 커피두잔 시켜 먹고 내 리무진(쉐비 픽업 트럭)으로 다운타운을 향해 달려갔다
이거 주차가 장난이 아니겠는 걸.
"자우간 사진 찍어 건물이라도 눈에 익숙하게 올립시다"
그러슈~~
두바퀴를 더 돌았다 공원 주변을 깨스값도 장난아닌데...
보태니컬 가든 주차장으로 ~~ 샛길로 ~~ 걸어걸어 눈으로 확인하고 ~~~
"에궁 다시는 야출 안간다~~"
그랴 다음엔 이곳에서 다음엔 먼곳에서 ~~~~ 가래떡님 계속 나를 홀린다.

"마늘 샀수?"
아니요
"참기름 샀수"
아니요
그럼 낼 고기 머에다 찍어 잡술라우?
"기냥 당근에 풋고추 상추 싸서 먹자구요"
안돼 이건 않돼
"풋마늘, 소금 그리고 참기름 있어냐 묵지"
그럼 좀 사가지고 오슈~~ 나 오늘 완존히 졌다
오늘 경비 Food & Coffe $6.95+Gas $9.00+ 토요일 일당 X 1.5배 + Etc.

(주)아래 글은 우리 아사동 활동에 협력을 많이 해주시는 유에쓰데일리 최성진 편집국장님께서 올려주신 글입니다.
오늘은 아일랜드 고유의 명절에서 비롯된 성 패트릭 축제일이다. 청교도의 후예인 앵글로색슨계에 이어 미국땅을 밟은 아일랜드계 이민자들의 최대명절인 성 패트릭 데이는 추수감사절이나 성탄절처럼 공휴일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이날을 기념해 녹색옷을 입고 등교할 것을 권유할 정도로 대중적인 명절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특정 민족의 고유 명절이 전세계적으로 퍼진 경우는 극히 드문데 성 패트릭 축제일은 수천만 명의 아일랜드인들이 거주하는 미국은 물론 캐나다와 호주, 일본, 싱가폴, 그리고 심지어 한국에서까지 기념될 정도로 세계화된 기념일로 잡아가고 있는 중이다.



* 아일랜드 이민자들의 애환과 함께 자리 잡은 성 패트릭 축제일

먼저 성 패트릭 축제일의 유래를 살펴보자. 성 패트릭 축제일은 5세기에 사망한 패트릭의 기일을 기념하는 날이다. 원산지인 아일랜드에서 천년 이상 이어진 고유 명절이 미국을 통해 전세계에서 널리 알려진 것은 아일랜드인들의 신대륙 이주 이후부터였다. 최초의 성 패트릭 축제일 기념 행진이 시작된 곳도 아일랜드가 아닌 미국에서였다.

영국군에 복무하던 아일랜드 출신 군인들은 1762년 3월 17일 뉴욕시를 가로질러 최초의 성 패트릭 축제일 기념행진을 했고 이후 하나의 전통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일랜드인들의 고유명절인 성 패트릭 축제일은 신대륙에서 2등 시민으로 구차한 삶을 살아가던 아일랜드인들의 뿌리의식을 고취시키고 단결력을 강화하는 매개체가 됐다.

전통적으로 가톨릭이 강세인 아일랜드에서는 전체 인구의 90%가 가톨릭 교인이지만 19세기 중반까지 미국에 살던 아일랜드 이민자들의 대다수는 개신교인들이었다. 가톨릭 교인들이 미국땅을 밟은 것은 1845년 이후 5년 동안 지속된 ‘감자기근(the Great Potato Famine)’ 때문이었다. 당시 백만명에 달하는 아일랜드 빈민들이 기아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일랜드를 떠나 미국으로 이주했는데 이들 중 대다수가 가톨릭 교인들이었던 것이다.



* 개신교들이 주축을 이루는 미국사회에서 배척 받으며 성장

이들 가톨릭 교인들은 개신교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던 미국사회에서 배척을 받으며 허드렛일조차 찾기 어려울 정도로 고생을 해야 했다. 개신교인들은 성 패트릭데이를 기념하기 위해 거리에 나선 아일랜드인들을 술취해 거칠게 행동하는 원숭이로 묘사하는 만화를 신문에 게재할 정도로 아일랜드인들의 종교와 억양에 대해 노골적인 경멸을 퍼부었다.

하지만 수가 적지 않았던 아일랜드계 가톨릭 교인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깨닫고 이를 이용해 입지를 확고히 다져나갔다. 아일랜드 이민자들의 단결은 ‘녹색조직(green machine)’으로 알려진 밀집지역을 통해 이뤄졌고 결집된 힘을 바탕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성 패트릭데이 행진 역시 선거에 출마한 정치인들이라면 반드시 참가해야 할 만큼 아일랜드 이민자들의 힘을 과시하는 행사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특히 1948년 투르만 대통령이 뉴욕에서 열린 행진에 참석한 것은 정착과정에서 앵글로색슨계의 인종적 편견과 선입관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던 아일랜드 이민자들에게 자부심을 갖도록 만든 사건이었다. 성 패트릭 축제일은 미국에서 명절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한 이후 캐나다와 호주, 그리고 일본과 싱가폴, 러시아, 한국에서도 기념되는 지구촌의 축제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 녹색이 성 패트릭 축제일의 상징이 된 이유

이날 녹색옷을 입는 이유 역시 성 패트릭 추기경과 관계가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아일랜드에 기독교를 전파한 성 패트릭이 삼위일체론을 가르치기 위해 초록색 세잎 클로버를 이용했다는 일화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후 초록색과 클로버 잎 문양(shamrock)은 아일랜드의 상징이 됐으며 녹색의 옷을 입고 녹색의 맥주를 즐겨 마시는 것이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미국에서도 이날 녹색옷과 모자, 장신구를 걸치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고 일부 TV출연자들이 녹색이 포함된 의상을 갖추고 방송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주변강국의 침략에 시달려야 했던 아일랜드인들의 애환이 담긴 기념일

‘성 패트릭 축제일’은 단순한 종교 축제 이전에 수천년의 역사 동안 주변강국의 침략 때문에 항상 고통당해야 했던 유럽 변방의 소국 아일랜드인들의 애환이 담긴 기념일이다. 주변국들의 침략으로 인해 고달프고 힘겨운 삶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올 수 있었던 유일한 의지처는 교회였고 그 교회가 상징하는 기독교가 전래된 것이 성 패트릭 추기경 때문에 그의 사망일을 기념하는 성 패트릭 축제일은 아일랜드인들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날이라 할 수 있다.

평소 술마시기를 즐기는 아일랜드인들은 이날 특별히 많은 술을 많이 마시는데 전통주인 기네스(Guiness)에 위스키와 베일리즈를 섞은 폭탄주는 물론 인공색소를 이용해 녹색빛이 나는 맥주를 즐겨 마신다.

이제 아일랜드인 고유의 축제였던 성 패트릭 축제일은 아일랜드와 크게 상관이 없어 보이는 일본이나 싱가폴, 러시아, 그리고 한국에까지 전해져 인종과 종교에 무관하게 기념되고 있다. 물론 원산국인 아일랜드에서는 종교적 색채가 남아있어 1970년까지 아일랜드의 법에 의해 이날 모든 술집이 문을 닫기도 했다지만 이제는 관광산업 육성을 노리는 아일랜드 정부에 의해 하나의 문화상품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마치 크리스마스가 종교와 무관한 명절처럼 기념되는 것처럼 말이다. 해마다 백만명 이상의 인파가 모여 행진과 콘서트, 야외공연, 불꽃놀이 등을 즐긴다는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을 비롯해 뉴욕과 LA등 미국의 대도시들에서도 대대적인 행사가 벌어진다.

/ 최성진 편집국장